밤이 아닌 산책

책 표지


밤이 아닌 산책

이미욱 소설집 


저자
이미욱 
출간일
2020년 09월 16일
가격
13,800
크기
126 * 188 * 22 mm / 298 g
페이지
228
ISBN
9791190971010

도서 소개

ㆍ ‘뿔’이 난 비밀스러운 사람들

이미욱의 두 번째 단편소설집 『밤이 아닌 산책』에는 ‘뿔’이 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뿔은 표제작 「밤이 아닌 산책」에서처럼 직접적으로 이야기되기도 하고, 「여기 없는 날들」의 그녀가 그러하듯 통증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에버그린의 방향」 초반 준호의 무신경함이나 「사수의 의무」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가방에의 집착, 그리고 「이해 불가능한 시도」에서 인애와 혜란의 날선 대화는 모두 그 자신의 뿔에서 기인한 것이다. 비행기 옆자리 노부인의 알 수 없는 러시아말과 남편의 사소한 오해는 「사랑의 미로」의 주인공을 뾰족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때 뿔은 인물들이 겪은 상실과 결핍의 자리에서 자라난 상처이다. 「밤이 아닌 산책」과 「여기 없는 날들」, 「에버그린의 방향」은 모두 떠나보내야만 했던 그러나 차마 보낼 수 없는 이들이 심연에 자리하고 있으며, 「사수의 의무」와 「이해 불가능한 시도」에서 인물 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원인에는 결핍에의 감각과 그로 인한 상처들이 존재한다. 「사랑의 미로」에서 사랑으로 충만한 신혼부부에게서 감지되는 어렴풋한 뿔 또한 앞으로 이들이 삶에서 겪게 될지도 모를 상처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리라.
이 날카로운 뿔들은 얼핏 주변 인물들을 향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 그것에 가장 깊게 찔리고 있는 이는 뿔의 소유자들이다. 자신의 가장 은밀한 상처인 뿔을 끌어안은 채 앓고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 각자의 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ㆍ ‘응어리지고 무너지는 마음’을 응시하며 살아간다는 것

살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상실을 떠올려볼 때, 어쩌면 생生이란 필연적으로 결핍이자 상처투성이인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마음이 응어리지고 무너지는 경험 또한 허다할 것이다. 문제는 이토록 요동치는 생의 현장에, 생채기가 덧나서 곪아 터지고 누군가에게는 뿔이 돋아남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그리고 무정하게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흘려보내지 못하는 마음들. 이미욱 소설의 인물은 이 마음들을 외면하거나 방기하지 않고, 사력을 다해 천천히, 진득하게 바라본다. 그러한 응시에 힘입어 소설 속 인물들은 다시금 삶 속으로 발을 내디딘다. 이 한걸음이 결코 미약하지 않은 까닭은, 삶이 아무리 ‘이해 불가능한’ 것이며 ‘미로’ 같은 것일지라도 ‘제 걸음’으로 살아가려는 의지가 거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문밖을 나가는 일이야말로 묘책을 얻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일지도 몰랐다.
-「여기 없는 날들」에서

“삐쭉삐쭉 통증이 오는데 걸으면 안 아파요. 신기하게. 그래서 계속 걸어야겠어요.”
-「밤이 아닌 산책」에서

통증은 앞으로도 종종 인물들을 찾아올 것이며, 그때마다 그들은 걸을 것이다. 아픈 생을 포기하지 않고 견디며 살기 위해 부단히 걸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욱 소설에서의 산책, 즉 걷는 행위는 결핍과 상처의 삶을 끌어안는 ‘생존전략’이다. 이 산책의 힘이 소설 속 인물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소설집이 지닌 의미가 묵직하게 다가갈 것이다.

“이미욱의 상기술는 고통스러운 삶의 모든 순간을 기어이 되살려내고 마주한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삶의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욱은 삶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상기란 삶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다.
자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나와 조우하는 이미욱 소설의 아름다운 장면들에서
새로운 생을 꿈꾸는 에로스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차선일(문학평론가) 해설, 「자신에서 벗어나는 법과 나에게로 돌아가는 길」에서

ㆍ ‘소설의 바다’를 항해하는 호밀밭 소설선, 각기 다른 ‘사연의 고고학’을 꿈꾸며

이미욱 작가의 『』밤이 아닌 산책『』은 소설의 바다로 향하는 호밀밭 소설선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는 한국 소설의 사회적 상상력을 탐구한다. 또한 문학과 예술의 미적 형식을 타고 넘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흔적을 새롭게 탐사하는 서사적 항해를 꿈꾼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아파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또 때로는 서로를 보듬으며, 난파한 세상 속으로 함께 나아가는 문학적 모험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호밀밭의 소설은 미지의 세계를 발명하는 낯선 이야기의 조타수가 되기보다는, 우리가 상실한 생의 가치와 존재 방식을 집요하게 되물으며, 동시에 우리 삶에 필요한 따뜻한 자원을 발굴하는 ‘사연의 고고학자’가 되고자 한다. 소설이라는 사회적 의사소통 방식은 분명 오래된 것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 삶과 공동체의 가치를 새롭게 정초할 수 있는 ‘여전한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소설의 바다’로 나아가려는 이유이다.
-호밀밭 문학편집부


목차

  • 밤이 아닌 산책
    여기 없는 날들
    에버그린의 방향
    사수의 의무
    이해 불가능한 시도
    사랑의 미로
    *
    해 설
    작가의 말


추천사 


  • 나여경(소설가)
    이미욱의『밤이 아닌 산책』은 ‘된다’ ‘있다’에 기원한 ‘존재’를 확인하는 여정이다. 서늘한 여정을 따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애처로운 등에 가만히 손 얹게 된다. 그 손길의 따스함은 치유 받지 못한 채 봉인된 어느 누군가의 상처에도 가닿아 공감의 위로가 될 것이다. 작품 속 산책길은 소설 안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번잡한 도로와 대조되면서 환한 태양 아래서는 읽을 수 없는 존재의 웅숭깊은 사색을 음우한다. 각각의 작품은 꼬리와 머리가 연결된 한 편의 옴니버스같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강에서 수놈으로 살다 바다에서 암놈으로 변해 알을 낳고 죽는 소설 속 장어의 에피소드처럼 남녀를 아우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생은 극복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저자 소개

향기, 은영, 섬나리 

전 지구적인 동물해방 풀뿌리 네트워크 직접행동DxE(Direct Action Everywhere) 활동가. 각자 따로 견뎌오던 삶의 행적이 동물해방이라는 대의 아래 연결되었다. 방해시위, 공개구조, 도살장 락다운 등의 액션으로 한국 동물권 시민불복종 운동에 불을 붙였다. 농장, 도살장, 법정 그리고 식당의 선을 맹렬히 비폭력적으로 넘나들며 동물권에 대한 담론을 끌어올렸다.
모든 동물이 행복하고 안전하고 자유로운, 즉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존중받는 세상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앞으로 더욱 강력한 동물해방 운동을 위한 공동체를 짓고, 동물권리장전이 포함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한 세대 안에 동물해방을 이뤄내는 것이 목표다.



🖋 책 속으로

“잘 걸어가소. 제 걸음대로 산다지 않소.”
마치 점쟁이가 내다보는 것처럼 들렸다. 여자는 아이를 쫓아가는 걸음을 떠올렸다.
“어서 걸어가소. 더 늦기 전에.”
여자는 난쟁이의 말을 곱씹었다. 더 늦기 전에.
-「밤이 아닌 산책」, 28쪽

언니는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며 어루만져 주었다. 그 손바닥의 온기에 그녀의 몸속 깊숙이 쌓여 있던 소금 같은 것들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바닷물이 들이치듯 짜디짠 냄새가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여기 없는 날들」, 66쪽

마음이 비워졌다가 채워졌다가 하는 것이 어쩌면 가족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에버그린의 방향」, 83쪽

욕심에 따라 세상이 움직이는 거야. 그런 욕심도 없다니. 넌 아무것도 가질 수 없을 거야.
-「사수의 의무」, 128쪽

왜 담배를 피우는 거야?
혜란이 꺼진 담배꽁초를 보며 물었다.
엄마한테 나는 냄새가 싫어서.
무슨 냄새인지 궁금했지만 혜란은 묻지 않았다. 인애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저 짐작할 뿐이었다.
담배를 피우면… 이상하게 엄마가 좀 덜 밉기도 하고.
엄마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담배를 피다니. 흡연하는 이유 중에서 가장 슬픈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 불가능한 시도」, 154~155쪽

그대 작은 가슴에 심어준 사랑이여 상처를 주지 마오 영원히…. 누군가의 얼굴을 이렇게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우리는 하염없이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사랑의 미로」, 202~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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