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6 가정家庭이란 집 가家 자와 뜰 정庭 자를 합친 말입니다. 단지 집만으로는 가정이 완성되지 못한다는 뜻이겠지요. 가족에게는 함께 머물고, 바라보고,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인 뜰이 필요합니다.
p.9 하버드대학교 생물학 교수 에드워드 윌슨은 말합니다. “인간의 본성 깊숙한 곳에는 생명에 대한 애착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식물에 이끌리는 이유는 그 안에서 생명과 회복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정원에서 있는 힘껏 꽃을 피우는 식물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정서적 감정을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p.29 지의류 같은 공생체가 육지에 자리 잡게 된 이후, 바다의 녹조류는 육지 상륙을 계속하면서 더 진화했습니다. 바닷가 물웅덩이 주변으로 뿌리, 줄기, 잎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싹을 틔워냈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육상 식물이라 할 수 있는 ‘선태류’입니다.
p.44 꽃은 계절 변화에 따라 피고 지고, 자연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면서 특정 생물들에게 번식 또는 활동을 유도하는 식물 기관입니다. 식물이 한 송이 꽃을 피워낸다는 것은, 식물이 다른 지구 생명체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뜻이지요. 우리 인간도 예외는 아닙니다.
p.50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 지나고 눈이 녹기 시작하는 우수가 오면, 겨울의 앙상한 가지 끝에 꽃눈이 하나둘씩 생겨납니다. 개구리가 잠에서 깨는 날, 경칩이 오면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나는 식물들이 도시의 봄을 맞이합니다. 가장 먼저 봄을 맞이하는 식물은 매화입니다.
p.55 산수유의 노란 꽃은 멀리서 보기보다 다가가서 자세히 바라봐야 합니다. (…) 산수유의 노란 꽃이 피면, 나무에 다가가 소리 없이 팡팡팡 터지는 노란 폭죽을 감상해 보세요. 회색빛으로 느껴졌던 무미건조한 일상에 반짝이는 기쁨이 더해질 겁니다.
p.104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지구 대기 중 적정 산소 농도는 ‘그냥’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매 순간 끊임없이 광합성을 하며 만들어 내는 결과라는 사실을요. 인간을 위한 자원, 기분 전환을 위한 소비재로 식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공생의 동반자’로 바라보려는 인식 전환의 시도가 절실한 때입니다.
p.109 결과적으로 살펴보면 벼, 밀, 옥수수, 보리, 수수 등 야생의 볏과 식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문화적 진화를 선택하고 문명을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즉, 인류는 식물과의 공진화를 통해 문명 생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p.118 흙 위에서 자라난 식물들은 얼핏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리고, 빛을 좇아 몸을 틀고, 뿌리는 물길을 찾아 보이지 않는 깊은 땅속을 더듬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읽고 잎을 떨어뜨리며, 뜻밖의 가뭄이나 병해충에도 묵묵히 버팁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는 걸, 식물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p.128 산딸나무 십자가 모양의 꽃잎은 실제로는 ‘꽃잎’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잎이 변형된 포엽(苞葉)이지만 우리 눈에는 꽃잎으로 착각할 정도인데, 이는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진화의 산물입니다.
p.133 우리 곁에서 향기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식물도 있습니다. 바로 덩굴식물인 마삭줄입니다. 제가 자주 산책하는 해반천 근처, 김해 경전철 교각 아래 콘크리트 벽면에는 마삭줄이 식재되어 삭막한 회색 공간을 초록으로 채워줍니다.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 마삭줄로 가득한 그 공간을 지나면 달콤한 재스민과 비슷한 향이 바람에 실려 코끝을 간질입니다.
p.141 대한민국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알게 모르게 아왜나무를 스쳐 지나갑니다. (…) 아왜나무 잎은 두껍고 수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서 방화수로 적합한 수종입니다. 아파트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불이 옮겨 붙으면, 나무의 수분이 빠져나오면서 거품을 형성하여 화재 차단막을 만듭니다. 자연이 만들어 낸 천연 소화기인 셈입니다.
p.170 지금 우리 인류에게 닥친 최대의 전 지구적 환경문제는 누가 뭐래도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위기입니다. 2015년 파리 협정 이후, 전 세계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이 1.5℃를 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을 공동의 약속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2024년 지구 평균 기온이 1.55℃ 이상 오르면서, 인류가 지켜내려 했던 1.5℃의 한계선은 결국 깨지고 말았습니다.
p.179 식물과 벌이 서로를 부르며 꽃을 피우듯, 인간도 자연과 손을 맞잡아야 합니다. 인류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연 생태계와 함께하는 지속 가능성으로의 사고 전환이 필요합니다.
p.183 과거 인류 문명이 볏과 같은 특정 작물을 집중적으로 길러내며 자연을 ‘선택’했다는 점을 앞서 이야기했던 걸 기억하시나요? 이를 통해 인류는 배고픔을 해결하고 문명을 일궈냈지만, 자연의 다양성을 줄이고 생태계 균형을 무너뜨린 셈이기도 합니다. 자연 생태계 가치를 인간의 필요에 기반하여 평가하는 관점은 이제 비판받아야 합니다.
p.191 꽃과 나무는 그 존재만으로도 많은 것을 우리에게 건네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그 속에 살면서도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일조차 잊고 지냅니다. (…) 이제 우리 곁에 고요히 피어나고 물들어 가는 꽃과 나무를 천천히 들여다보며, 식물이 전하는 교훈에 귀 기울여봅시다.
p.214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생명의 공간,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연과 다시 가까워지는 것이야말로 진짜 풍요로운 삶을 찾는 길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다시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p.221 초기의 공원은 ‘휴식 공간’이기보다는 ‘공중 위생’과 ‘건강’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의사 존 스노우는 콜레라의 원인이 오염된 물임을 밝혔고, 사회개혁가 옥타비아 힐은 노동자들을 위한 공공 공원을 제안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탄생한 도시공원은 건강한 도시의 숨 쉴 틈, 말 그대로 ‘도시의 허파’가 되었지요.
p.230 정원은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아도 괜찮고, 법적으로 지정된 부지가 없어도 됩니다. 아파트 화단 옆, 옥상, 골목길 옆 빈터도 정원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식물을 고르고, 심고, 가꾸고, 돌보는 과정을 통해 이 작은 공간은 단순한 녹지가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와 기억이 자라나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p.231 공원이 도시의 한복판에서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줬다면, 정원은 단절되었던 관계를 연결합니다. 골목에서, 담장 아래에서, 옥상 위에서 사람과 사람을 다시 연결하고, 식물과 사람을 하나로 이으며 우리를 회복시키는 작고 강한 연결점이 되어줍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원은 누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만들고, 함께 가꾸는 삶의 태도라는 점입니다.
p.244 이제는 바라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식물에게 먼저 다가가고, 이름을 불러주고,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가 되어주세요.
도시에서 화목을 꿈꿉니다
조경학자가 들려주는 사계절 식물 교양수업
도서 소개
기후 위기 시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식물에 대한 사유
도시에서 꽃과 나무
그리고 사람의 ‘화목’을 꿈꾸다!
식물은 인류보다 앞서 지구에 등장한 존재다. 약 5억 년 전, 바다의 복합생명체가 육상으로 이동해 진화하며 식물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인간은 그보다 한참 나중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식물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 김영하는 도시 녹지와 공원의 필요성을 연구하며 사람과 식물의 공존을 오랫동안 고민해 온 조경학자다. 그는 식물의 터전을 훼손하며 시작된 기후 위기 시대와 인류의 현주소를 짚고, 식물과 인간이 함께 숨 쉬는 미래를 위해 지금 꼭 필요한 사유의 전환을 우리에게 건넨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섭취하는 에너지와 영양은 결국 식물을 통해 얻는 것이다. 그럼에도 도시 속 꽃과 나무는 여전히 조경물로 취급되거나 때로는 무심히 버려지는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식물은 우리에게 대단한 경이로움을 전하는 존재이자, 함께 살아가는 생명임을 알 수 있다.
스마트폰을 쥐고 AI와 대화하는 지금, 잠시 속도를 늦추고 식물이 속삭이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출퇴근길, 집 앞 공원에서, 무심코 지나치던 골목에서 마주하는 식물들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일상에서도 충분히 삶의 성찰을 이끌어낼 수 있다.
꽃(花)과 나무(木)를 가꾸는 것은 마음을 가꾸는 일이다. 그리고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화목하게 가꾸는 일이기도 하다. 조경학자의 안내를 따라 사계절 교양수업을 따라가다 보면, 식물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자라고, 생명이 자라는 곳에 대화가 피어나며, 대화가 피어나는 곳에 ‘화목’이란 열매가 맺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개강 전, 교양수업 맛보기 퀴즈: 여러분은 식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18
[봄, 1학기]
1장. 우리 곁의 식물을 들여다본 적 있나요? _지구의 시간 속, 식물의 출현과 진화의 여정
지구는 처음부터 ‘푸른색’이었을까요? 27
식물은 어떻게 지구에 뿌리를 내렸을까요? 33
지구에 ‘꽃’이 피었습니다. 40
2장. 마지막으로 꽃향기를 맡아본 게 언제인가요? _눈앞에 펼쳐지는 식물의 첫인사
겨울잠을 깨우는 꽃나무 50
봄을 밝히는 꽃나무 59
3장. 인간은 왜 식물과 함께 살아야만 할까요? _호흡과 식량: 식물이 제공해 준 삶의 기반
산소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92
우리는 식물의 ○○○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99
씨앗 한 알로부터 시작된 인간 문명 106
[여름, 계절학기]
4장. 여름꽃을 보며 ‘오늘’의 기쁨에 젖어볼까요? _녹음 짙은 계절에 발견하는 생명의 경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꽃나무 119
여름을 비추는 꽃나무 144
[가을, 2학기]
5장. 미래를 위한 정답지는 어디에 있을까요? _위기의 시대, 공진화를 위한 사유
여러분은 10년 후의 인류를 상상할 수 있나요? 166
속도의 시대를 지나 생명의 방향으로 175
우리의 식탁을 지키는 방법을 알고 있나요? 181
6장. 식물이 물들인 도시의 색을 더 감상해 볼까요 _저무는 계절에 배우는 식물의 지혜
가을에도 꽃이 피는 나무 192
꽃보다 더 아름다운 단풍 200
7장. 우리는 왜 정원을 가꿔야 할까요? _공원에서 정원으로, 자연 결핍을 넘어 공동체로
‘자연결핍증후군’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210
‘공원’은 언제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요? 216
모두의 기억을 품은 정원의 시대를 향하여 226
[겨울, 종업식]
화목한 도시를 꿈꾸며 겨울에도 꽃을 생각합시다. 236
부록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도시생활자를 위한 독서 모임 발제문 246
참고 문헌 250
저자 소개
김영하
1976년생. 스무 살에 조경학을 전공하고, 사람에게 식물이 왜 필요한지 해답을 찾고자 일본 동경농업대학(Tokyo University Of Agriculture)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2009년 식물이 살아가는 녹지가 주거지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부산연구원에서 공원녹지 및 도시 녹지 계획에 대한 다수의 정책 연구를 수행했으며, 현재는 모교인 동아대학교에서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4년에는 부산연구원 부산학연구센터에서 발간하는 부산학 교양총서 『부산 도시공원 역사 이야기』 집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번에 펼쳐 보이는 『도시에서 화목을 꿈꿉니다』는 오랜 기간 연구에 몸담아 온 저자가 대중의 눈높이에서 써내려 간 첫 인문교양서다. 저자는 스스로를 ‘식물대변인이 되고 싶은 조경학자’라 소개하며, 아래와 같은 바람을 전한다.
“사람들은 식물의 존재를 쉽게 잊는다. 나 역시 그랬다. 말 없는 식물이 우리 삶에 건네는 의미를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 많은 이들이 도시의 사계절 꽃과 눈을 맞추며 식물과 관계를 맺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앞으로도 회색 도시에 초록을 심고, 식물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고 싶다.”
🖋 책 속으로
p.6 가정家庭이란 집 가家 자와 뜰 정庭 자를 합친 말입니다. 단지 집만으로는 가정이 완성되지 못한다는 뜻이겠지요. 가족에게는 함께 머물고, 바라보고,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인 뜰이 필요합니다.
p.9 하버드대학교 생물학 교수 에드워드 윌슨은 말합니다. “인간의 본성 깊숙한 곳에는 생명에 대한 애착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식물에 이끌리는 이유는 그 안에서 생명과 회복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정원에서 있는 힘껏 꽃을 피우는 식물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정서적 감정을 되찾아야 할 때입니다.
p.29 지의류 같은 공생체가 육지에 자리 잡게 된 이후, 바다의 녹조류는 육지 상륙을 계속하면서 더 진화했습니다. 바닷가 물웅덩이 주변으로 뿌리, 줄기, 잎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싹을 틔워냈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육상 식물이라 할 수 있는 ‘선태류’입니다.
p.44 꽃은 계절 변화에 따라 피고 지고, 자연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면서 특정 생물들에게 번식 또는 활동을 유도하는 식물 기관입니다. 식물이 한 송이 꽃을 피워낸다는 것은, 식물이 다른 지구 생명체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뜻이지요. 우리 인간도 예외는 아닙니다.
p.50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 지나고 눈이 녹기 시작하는 우수가 오면, 겨울의 앙상한 가지 끝에 꽃눈이 하나둘씩 생겨납니다. 개구리가 잠에서 깨는 날, 경칩이 오면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나는 식물들이 도시의 봄을 맞이합니다. 가장 먼저 봄을 맞이하는 식물은 매화입니다.
p.55 산수유의 노란 꽃은 멀리서 보기보다 다가가서 자세히 바라봐야 합니다. (…) 산수유의 노란 꽃이 피면, 나무에 다가가 소리 없이 팡팡팡 터지는 노란 폭죽을 감상해 보세요. 회색빛으로 느껴졌던 무미건조한 일상에 반짝이는 기쁨이 더해질 겁니다.
p.104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지구 대기 중 적정 산소 농도는 ‘그냥’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매 순간 끊임없이 광합성을 하며 만들어 내는 결과라는 사실을요. 인간을 위한 자원, 기분 전환을 위한 소비재로 식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공생의 동반자’로 바라보려는 인식 전환의 시도가 절실한 때입니다.
p.109 결과적으로 살펴보면 벼, 밀, 옥수수, 보리, 수수 등 야생의 볏과 식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문화적 진화를 선택하고 문명을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즉, 인류는 식물과의 공진화를 통해 문명 생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p.118 흙 위에서 자라난 식물들은 얼핏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해를 따라 고개를 돌리고, 빛을 좇아 몸을 틀고, 뿌리는 물길을 찾아 보이지 않는 깊은 땅속을 더듬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읽고 잎을 떨어뜨리며, 뜻밖의 가뭄이나 병해충에도 묵묵히 버팁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는 걸, 식물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p.128 산딸나무 십자가 모양의 꽃잎은 실제로는 ‘꽃잎’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잎이 변형된 포엽(苞葉)이지만 우리 눈에는 꽃잎으로 착각할 정도인데, 이는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진화의 산물입니다.
p.133 우리 곁에서 향기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식물도 있습니다. 바로 덩굴식물인 마삭줄입니다. 제가 자주 산책하는 해반천 근처, 김해 경전철 교각 아래 콘크리트 벽면에는 마삭줄이 식재되어 삭막한 회색 공간을 초록으로 채워줍니다. 무더운 여름이 오기 전, 마삭줄로 가득한 그 공간을 지나면 달콤한 재스민과 비슷한 향이 바람에 실려 코끝을 간질입니다.
p.141 대한민국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알게 모르게 아왜나무를 스쳐 지나갑니다. (…) 아왜나무 잎은 두껍고 수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서 방화수로 적합한 수종입니다. 아파트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불이 옮겨 붙으면, 나무의 수분이 빠져나오면서 거품을 형성하여 화재 차단막을 만듭니다. 자연이 만들어 낸 천연 소화기인 셈입니다.
p.170 지금 우리 인류에게 닥친 최대의 전 지구적 환경문제는 누가 뭐래도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위기입니다. 2015년 파리 협정 이후, 전 세계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이 1.5℃를 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을 공동의 약속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2024년 지구 평균 기온이 1.55℃ 이상 오르면서, 인류가 지켜내려 했던 1.5℃의 한계선은 결국 깨지고 말았습니다.
p.179 식물과 벌이 서로를 부르며 꽃을 피우듯, 인간도 자연과 손을 맞잡아야 합니다. 인류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연 생태계와 함께하는 지속 가능성으로의 사고 전환이 필요합니다.
p.183 과거 인류 문명이 볏과 같은 특정 작물을 집중적으로 길러내며 자연을 ‘선택’했다는 점을 앞서 이야기했던 걸 기억하시나요? 이를 통해 인류는 배고픔을 해결하고 문명을 일궈냈지만, 자연의 다양성을 줄이고 생태계 균형을 무너뜨린 셈이기도 합니다. 자연 생태계 가치를 인간의 필요에 기반하여 평가하는 관점은 이제 비판받아야 합니다.
p.191 꽃과 나무는 그 존재만으로도 많은 것을 우리에게 건네고 있는데, 정작 우리는 그 속에 살면서도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일조차 잊고 지냅니다. (…) 이제 우리 곁에 고요히 피어나고 물들어 가는 꽃과 나무를 천천히 들여다보며, 식물이 전하는 교훈에 귀 기울여봅시다.
p.214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생명의 공간, 살아 있는 공간입니다.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연과 다시 가까워지는 것이야말로 진짜 풍요로운 삶을 찾는 길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다시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p.221 초기의 공원은 ‘휴식 공간’이기보다는 ‘공중 위생’과 ‘건강’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의사 존 스노우는 콜레라의 원인이 오염된 물임을 밝혔고, 사회개혁가 옥타비아 힐은 노동자들을 위한 공공 공원을 제안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탄생한 도시공원은 건강한 도시의 숨 쉴 틈, 말 그대로 ‘도시의 허파’가 되었지요.
p.230 정원은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아도 괜찮고, 법적으로 지정된 부지가 없어도 됩니다. 아파트 화단 옆, 옥상, 골목길 옆 빈터도 정원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식물을 고르고, 심고, 가꾸고, 돌보는 과정을 통해 이 작은 공간은 단순한 녹지가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와 기억이 자라나는 공간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p.231 공원이 도시의 한복판에서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줬다면, 정원은 단절되었던 관계를 연결합니다. 골목에서, 담장 아래에서, 옥상 위에서 사람과 사람을 다시 연결하고, 식물과 사람을 하나로 이으며 우리를 회복시키는 작고 강한 연결점이 되어줍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원은 누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만들고, 함께 가꾸는 삶의 태도라는 점입니다.
p.244 이제는 바라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식물에게 먼저 다가가고, 이름을 불러주고,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가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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